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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안내

주임신부님 인사말

홍기범 바오로 신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
혜화동성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글귀는 삶의 지향이 약해진 우리들에게 진리에 이르는 길을 손짓하고 있습니다.

서울교구의 심장부에 위치하면서 한국 가톨릭 지도자의 90%이상을 배출해낸 본당은 명동성당, 약현성당에 이어 서울의 세번째 천주교본당으로 설립된, 명실상부 한국 가톨릭의 살아있는 역사이며 신앙의 터전입니다.

본당소개

혜화동성당 (1927. 4. 29~)

혜화동의 옛이름인 잣나무골이라는 뜻의 ‘백동’으로 불리기도 했던 혜화동성당은 그 건축양식의 우수성은 물론 한국 대표작가들이 참가한 우수한 성 미술품으로 인해 한국 가톨릭의 기념비적인 성당으로 평가되는 있습니다.
본당소개

본당유래

서울의 세번째 본당으로 창설

1909년부터 1927년까지 동소문(혜화동) 일대에 자리했던 한국 최초의 남자 수도회인 성 베네딕도회가 혜화동에서 철수하던 1927년 10월 7일, 제8대 서울교구장 뮈뗄 민 대주교는 종현 본당으로부터 혜화동 일대를 분리하여 새 본당을 신설하니, 혜화동 본당은 약현 본당(1893년 창설)과 종현 본당(1898년 창설)에 이어 서울의 세번째 본당으로 탄생하였다.

이렇게 본당수가 적을 때였으므로 신설 혜화동 본당의 관할구역은 매우 넓었다. 남으로는 동대문밖, 서쪽으로는 광희문 밖, 북쪽으로는 종로 3가를 경계로 동소문에 거쳐 그 이북 지방을 관할하는 실로 광대한 지역이었다. 서울을 벗어나서는 경기도 광주군을 비롯하여 양주군, 고양군의 3분의 1, 용인군 일부가 혜화동 본당 관할지역에 속했고 많은 공소가 설치되었다.

백동 본당의 유래

행정상의 관청을 따서 본당의 정식 명칭은 [혜화동 본당]이었지만 [백동(柏洞) 본당]으로도 많이 불리었다. 현재도 연로한 성직자들이나 교우들이 혜화동 본당보다는 백동 본당으로 즐겨 호칭하리만큼 [백동 본당]이란 속칭은 일 종의 애칭으로 오랫동안 전해오고 있다.

*백동(柏洞=俗語로는 柏洞=잣골)이란 동명(洞名)은 일찌기 태종조의 공신 조은이 이곳에 잣나무를 많이 심고 그 잣나무 사이에 백림정(柏林亭)을 짓고 지낸데서 유래하였다. 초기시절의 백동 본당 교우들은 혜화문(동소문)을 통하여 성당 출입을 빈번히 하였다. 따라서 이 성문의 교회사적 가치도 매우 중요하다. 본당유래

본당역사

본당설립이전

1784 한국천주교회 창설
1866년경 지금의 혜화동에 신자들이 거주하기 시작함
1909. 12.13 교황청에서 백동 수도회의 '서울 수도원'을 인가
1918 '동소문 밖 공소'설립

본당의 설립과 정착 (1927.4~1936.5)

1927. 4. 29. 백동(혜화동) 본당 설립
파리외방 전교회의 지사원(Chizallet) 베드로신부 초대주임으로 임명
1929 서기창 프란치스코신부 제2대 주임으로 부임
1929. 5. 백동 가톨릭 합창단 창단
1929 혜화동 청년 친우회 발족, 백동성당 강복식과 낙성식
1929 - 1933 '안나회', '여자 성가대', '혜화동 소년회' 설립

본당의 성장을 위한 노력 (1936.5~1948.8)

1936 오기선(요셉)신부 제3대 주임으로 부임
1937 혜화유치원 설립인가
1939 파리 외방 전교회의 성재덕(Singer, 베드로)신부 제4대 주임으로 부임
제기동 본당 분할(첫번째 자본당)
1945 미아리 본당 분할(두번째 자본당)
1948 메리놀외방전교회의 기후근(Craig, 후고)신부 제5대 주임으로 부임

6.25전쟁과 성당건축의 대역사 (1948.8~1962.9)

1948 도(Duffy, 파트리치오)신부 제6대 주임으로 부임
1950 정원진(루가)신부 제7대 주임으로 부임
1952.4.25 본당설립 25주년 은경축
1955 돈암동 본당 분할(세번째 자본당)
1959 장금구(크리소스토모) 신부 제8대 주임으로 부임
1960. 6.25 신축성당 완공축성식

본당의 성장과 교세의 확대 (1962.9~1975.5)

1962 류수철(도미니코) 신부 제9대 주임으로 부임
1965 수녀원 준공 축성
1968 이계중(요한)신부 제10대 주임으로 부임
1969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식
1973 박귀훈(요한)신부 제11대 주임으로 부임 , 사목위원회 구성
1975 성북동 본당 분할(네번째 자본당)

본당의 현대화와 변모 (1975. .5~1985.8)

1975 박희봉(朴喜奉, 이시도로)신부 제12대 주임으로 부임
'순교 복자 79위 시복 50주년 기념 사제관' 준공 축성식
1977 '백동반세기'(혜화동 50년사) 발간
103위 순교 복자 성화 제막 및 축성(김수환 추기경 집전, 문학진제작) 본당 창설 50주년 경축 기념행사
1980 이기명(프란치스코 사베리오)신부 제13대 주임으로 부임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구성
1981 은총의 모후 꾸리아 설립
1983 교육관 완공 축성식
1984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신앙 대회 및 103위 한국 성인 시성식 거행

본당의 성장과 변모 (1985.8~1995.9)

1985 이상훈(리노) 신부 제14대 주임으로 부임
1987 본당 창설 60주년 기념행사 , 파이프 오르간 축성, 백동 60년사 발간
1989 세계 제44차 성체대회 참석, 지하성당 완공
1991 박순재(라파엘)신부 제15대 주임으로 부임

본당창설 70주년과 현재 (1995.9~현재)

1995 염수의(요셉)신부 제16대 주임으로 부임
1996 김대건 신부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1996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 (성 미술 도록) 출판
1997 분도의 집 완공 축성식 , 백동70년사 발간, 본당70주년 기념행사
1998 제 4지구장 본당으로 승격
-나원균(바오로)신부 제17대 주임 겸 제4지구 초대 지구장으로 부임
2000년을 맞이하는 날 새 삶운동 전개
2003 김철호(바오로)신부 제18대 주임 겸 제4지구장으로 부임
2008 최동진(베르나르도)신부 제19대 주임 겸 제4지구장으로 부임
2013 이재룡(시몬) 신부 제20대 주임 겸 제4지구장으로 부임

성직자

신부님

  • 주임신부 홍기범 바오로
  • 부주임신부 김우중 스테파노
  • 보좌신부 윤웅렬 하상바오로

수녀님

  • 원장수녀 김정숙 안젤라
  • 전교수녀 이춘화 마리아글라라
  • 전례수녀 정주은 마리로사

유치원수녀님

  • 유치원 원장 김동옥 마리루시

본당 주임신부

성명 세례명 재임기간 현임지
지사원 베드로 1927. 4.29 ~ 1929. 5. . 선종
서기창 프란치스코 1929. 5.29 ~ 1936. 5. 5. 선종(6.25. 전쟁중)
오기선 요셉 1936. 5. 5. ~ 1939. 7. 7. 선종(1990. 7.30.)
성재덕 베드로 1939. 7. 7. ~ 1948. 6. 1. 선종(1992. 2.26.)
기후근 후고 1948. 6. 1. ~ 1948. 8. 선종(1981. 1. 9.)
파트리치오 1948. 8. . ~ 1950. 6. . 선종(1980. 4.13.)
정원진 루가 1950.11.21. ~ 1959. 6. 6. 선종(1976. 4. 5.)
장금구 크리소스토모 1959. 6. 6. ~ 1962. 9.19 선종(1997. 7.11)
유수철 도미니꼬 1962. 9.19. ~ 1968. 6.14. 선종(1977. 8.29.)
이계중 요한 1968. 6.14. ~ 1973. 5.18. 선종(2013. 3.12.)
박귀훈 요한 1973. 5.18. ~ 1975. 2.22. 선종(2006. 8.23.)
박희봉 이시도로 1975. 2.22. ~ 1980. 5.15. 선종(1988. 8.10.)
이기명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980. 5.15. ~ 1985. 8.30. 원로사목
이상훈 리노 1985. 8.30. ~ 1991. 9. 5. 선종(2011. 1.28.)
박순재 라파엘 1991. 9. 5. ~ 1995. 9.20. 원로사목
염수의 요셉 1995. 9.20. ~ 1998. 10.9. 용산본당 주임신부
나원균 바오로 1998.10. 9. ~ 2003. 9.16. 원로사목
김철호 바오로 2003. 9.16. ~ 2008. 9. 6. 수유동본당 주임신부
최동진 베르나르도 2008. 9. 6. ~ 2013. 8.27. 방배4동본당 주임신부
이재룡 시몬 2013. 8. 27. ~ 2016. 8.30. 한국 성 토마스 연구소

본당출신 사제현황

성명 세례명 서품일자 현임지
심재덕 마르코 1936. 3.28. 선종(1945)
임종구 바오로 1936. 3.28. 선종(1968)
김영근 베다 1953. 7.19. 선종(2002)
이석충 요한 1954.12. 8. 선종(2012)
나상조 아우구스티노 1955. 4. 9. 선종(2008)
이상훈 리노 1958.12.21. 선종(2011)
정진석 니콜라오 1961. 3.18. 추기경(서울대교구 교구장으로 은퇴)
신현봉 안토니오 1962. 3.18. 원로사목(원주교구)
최승룡 테오필로 1962.12.21. 원로사목
장 흔 고르넬리오 1962.12.21. 미국 뉴욕 맨하탄본당 주임
장 익 요한 1963. 3.30. 주교(춘천교구 교구장으로 은퇴)
김대군 빠뜨리시오 1963.12.20. 원로사목
이종효 클레멘스 1967.12.12. 원로사목
최선웅 야고보 1971.12. 8. 원로사목
김정홍 루도비코 1973.12. 8. 원로사목
류장선 베드로 1975. . . 서강대학교
김재문 미카엘 1979. 2. 6. 선종(1980)
주수욱 베드로 1981. 2.24. 대방동본당 주임신부
박찬윤 히뽈리또 1984. 5. 5. 중계동본당 주임신부
류이규 프란치스코 1986. 2.21. 수원교구 세류동본당 주임신부
이원용 안드레아 1986. 2.21. 구파발본당 주임신부
김진태 그레고리오 1987. 7. 4. 가톨릭대학교
김우성 비오 1990. 2. 9. 의정부교구 만송리본당 주임신부
박명기 다미아노 1993. 7.16. 의정부교구 양주백석본당 주임신부
이승태 바오로 1995. 7. 5. 청파동본당 주임신부
양해룡 요한 1995. 7. 5. 서울대교구 사목국(선교, 전례 사목부)
김영철 시메온 1997. 7. 5. 남대문시장(준)본당 주임신부
양경모 대건안드레아 2009. 9.26. 이탈리아 유학중
장경근 안드레아 2009. 9.26. 길동본당 보좌신부
정다운 요한바오로 2011. 2. 8. 이탈리아 유학중
윤도관 프란치스코 2014. 2. 7. 서초3동본당 보좌신부
김비오 비오 2014. 2. 7. 신천동본당 보좌신부
박민재 미카엘 2015. 2. 6. 양천본당 보좌신부
김한솔 도미니코 2016. 2. 5. 상도동본당 보좌신부

본당 역대 사목회장

성명 세례명 재임기간
이규한 레 오 1929 ~ 1936
장기빈 레 오 1936 ~ 1937
김정회 안드레아 1937 ~ 1937
한창우 베네딕도 1937 ~ 1939
김봉학 그레고리오 1939 ~ 1950
황연상 아우구스티노 1950 ~ 1953
김옥윤 요 한 1953 ~ 1964
문창준 마 티 아 1964 ~ 1965
장 면 요 한 1965 ~ 1966
박병래 요 셉 1966 ~ 1974
류현석 요 한 1974 ~ 1982
박정훈 요 한 1982 ~ 1988
차우상 마 카 엘 1988 ~ 1991
조재길 베 드 로 1991 ~ 1993
여규태 요 셉 1993 ~ 2003
장정남 시 몬 2003 ~ 2004
탁원제 사 무 엘 2004 ~ 2008
한선근 다미아노 2008 ~ 2012
송인섭 안드레아 2012 ~ 2014
탁원제 사무엘 2015 ~ 현재

본당 건축 성미술

본당 건축물 소개

혜화동성당(등록문화재 제230호 지정 )은 1955년 건축가 이희태(요한)에 의해 설계되었다.
국내파 건축가로 철저하게 독자적이고 비주류적인 건축인생을 살았던 이희태의 작가의 소신이 녹아있는 본당건축은 단순명료한 기하학적인 형태, 비대칭적 입면구성 등 기존 성당건축의 정형된 틀을 깬 독자적 양식으로 1960년대 이후 교회건축의 한모델이 되었다.

특히 당시 한국성당 건축에 보편적으로 쓰는 고딕양식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모습일 띠고 있다.
기념비적인 크기의 계단 위에 올려진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단순한 상자형으로 지어졌고
내부는 기동이 없는 장방형 평면의 강당형 공간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정면 현관 위벽에는 ‘최후의 심판도’ 를 표현한 대형 부조가 자리잡고 있고
왼쪽 붉은 벽돌로 쌓은 종탑에는 주보 성인인 성베네딕도 상이 걸려있어
전체적으로 개성과 균형미를 갖추고 있다.

  • 성당
  • 성체조배실
  • 십자가의 길
  • 로사리오의 기도
  • 사제관
대성전
[최후의 심판도] 961, 화강암 부조

성당 입구 변면전체를 뒤덮은 ‘최후의 심판도’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대형 부조물로 1961년 故 김세중 서울대 교수가 원도를 작성하고, 장기은 교수와 함께 조각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요한 14,6)'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아니하리라(루카 21,33)' 라는 천주교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고, 아래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4명의 복음서 저자 상징이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성모상]- 1996. 최종태 요셉교수

한국적인 조각양식으로 마치 우리의 어머니같은 친근한 성모님을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성 베네딕도상] -1961년 김세중 프란치스코 교수 본당의 주보성인인 성 베네딕도(St.Benedictus Abbas)의 모습을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터치로 표현한 화강석 부조작품. 성인이 들고 계신 지팡이는 착한 목자임을, 책은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
성체조배실
[성녀 소화데레사상] 1993년 이종상교수가 영적 감동으로 1993년 제작, 기증한 작품으로 화강석 통돌로 정다듬해 아취돔을 만들고 황동의 성상을 그 안에 모셨다. 천상에는 성령을 나타내는 비둘기의 형상을, 배면에는 형상을 상하로 배치하고 중앙에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고상을 지극히 생략된 단선으로 표현했다. [성체조배실]

혜화동 본당의 주보성인이 원래는 베네딕도 성인 한분이셨으나 1960년경 성당 신축공사 시 소화데레사 성녀에게 9일 기도를 드리고 공사한 것을 계기로 이 두분을 모두 주보성인으로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베네딕도. 소화데레사의 이름 및 당시 주임신부였던 정원진(루가)신부, 기성회 임원과 위원의 명단을 기록한 한지를 연관에 넣어 정초식때에 땅에 묻었다. 이러한 연유로 1990년 소성당을 짓게 되었을 때 그 이름을 ‘소화성당’으로 부르게 되었다
십자가의 길
[성녀 소화데레사상]

1993년 이종상교수가 영적 감동으로 1993년 제작, 기증한 작품으로 화강석 통돌로 정다듬해 아취돔을 만들고 황동의 성상을 그 안에 모셨다. 천상에는 성령을 나타내는 비둘기의 형상을, 배면에는 형상을 상하로 배치하고 중앙에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고상을 지극히 생략된 단선으로 표현했다.
로사리오의 기도
[로사리오의 기도] -1994년 최봉자 레지나 수녀 작품, 화강석

본당 대성전 왼쪽벽에 위치에 있는 ‘로사리오의 기도’는 1994년 최봉자 레지나 수녀의 작품이다.
로사리오란 ‘묵주’ 혹은 ‘묵주의 기도’를 말하며 ‘장미의 꽃다발’이나 그 화관을 뜻한다. 로사리오의기원은 초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자기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뜻으로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쓰는 관습이 있었는데 특히 순교자들은 코로세움 경기장에 끌려가 사자의 먹이가 될때 하느님께 대한 합당한 예모로써 이 관을 썼었다. 이때 신자들은 밤중에 몰래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관을 한데 모아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가지씩 올렸는데 이것이 그 기원이 되었다.
사제관
[사제관]

성당건물과 함께 완공된 사제관은 교구청의 보조없이 총 공사비의 90% 이상을 본당 교우들의 성금으로 충당해 완공되었다. 이후 노후한 사제관의 신축공사가 1975년 한국순교복자 79위의 시복 50주년을 기념해 이루어졌다. 사제관 건립은 당시 사목위원들과 방장회에서 모금운동에 적극 앞장서 가능했는데 특히 당시 대학교 4학년생이던 김수영 아우구스티노가 갑자기 병사하면서 평소에 저축했던 50만원을 사제관 신축기금으로 봉헌하겠다는 유지를 남긴 미담은 유명하다 이런 마음이 모아져 1975년 12월 26일 “순교 복자 79위 시복 50주년 기념 사제관”이란 이름으로 준공되었다.

백동 성미술 소개

한국 가톨릭미술을 대표하는 다양한 성미술품을 소장한 혜화동성당은 단일 성당으로는 처음으로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 를 발간했을 정도로 성당전체가 의미있고 아름다운 성미술로 채워져있다.

103위 순교 성인화
1976년 9월 당시 박희봉(이시도로)주임신부는 문학진 (토마스)교수에게 '103위 순교복자성화'를 의뢰하였다. 작가는 10개월에 걸쳐 전례, 역사, 복식등 전문가(오기선 신부, 유홍렬 박사, 석주선 선생)등의 폭넓은 자문과 한국적 주체성을 살려 한 분 한 분의 표정을 특색있게 나타냈다. 시대와 신분이 각각 다른 순교자들이 평등한 위치에서 천국의 개선을 기다리며 기쁨에 가득차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평화와 감동을 안겨준다. 배경의 산세는 아름다운 도봉산의 일부로서 향토내음을 살짝 풍기고 있다. 이 성화는 1977년 7월 15일, 김수환 추기경의 제막과 축성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후,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03위 순교복자' 모두 성인 품에 오르게 되었다. 이 작품이 여의도 103위 시성식장에 나들이 다녀옴으로써 화면 곳곳에 박락현상이 생긴 것을 8월 문학진 화백이 직접 방문하여 전면적으로 화면 보수를 하였다.
제작과정에서 순교복자들의 배치를 대성당의 '79위 복자 성화도'(1926년, 프랑스인 쥬스타니안 제작)를 참조하였으나 대부이신 박갑성교수(당시 서강대 재직)께서 "외국인이 중앙에 있으면 주체성이 좀 부족해 보인다." 고 하신 의견을 받아들여, 중앙의 외국인 자리에 김대건 신부를 모시고 김대건 신부의 자리에는 외국인을 옮겨놓게 되었다. 당시 이는 '쿠테타'(Coup d' E' tat)라고 표현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고 한국 천주교회가 자생적인 것처럼, 성미술에 있어서도 주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 하나의 큰 결실이었다.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 창설이후, 200여 년의 역사 안에서 크고 작은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4대 박해로 불리는 1801년 신유(辛酉)박해, 1839년 기해(己亥)박해, 1846년 병오(丙午)박해, 1866년 병인(丙寅)박해를 통하여 1만명 이상이 순교하였다. 이렇게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자생교회(自生敎會)의 전통을 지닌 한국 천주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불사조와 같은 신앙의 생명력에 의해 심산유곡에 교우촌을 이루고 훗일 신앙자유의 날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1984년에는 순교한 선인들 가운데서 거룩한 성덕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세계에서 공경을 받는 103위 성인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십자고상
1958년 김세중(프란치스코) 교수가 청동으로 제작한 작품으로서 단조로운 것 같으면서도 그 조형이 매우 아름답다. 그리스도의 수난의 고통과 또 한편으로는 평화스러운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십자고상의 청동색상은 그가 디자인한 제대의 청녹색과 조화를 이루며 경건하고도 엄숙한 제단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십자가는 이집트, 카르타고 등의 고대 동방에서 죄인을 처형하던 도구였다. 이 형벌이 로마제국에 유입된 후,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시자 십자가는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사,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 그리스도를 믿고 따름으로써 당해야 하는 고통과 고난을 상징하게 되었다.

김세중 프란치스코 (1928~1986)
1928 경기도 안성 출생
195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1952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 조소과 졸업
1958 국전 추천작가
1960-198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
1961-1964 국전 심사위원
1972-76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 겸임
1964 유엔탑
1968 광화문 '충무공' 동상
1971 '세종대왕' 동상
1974 어린이대공원 분수조각
1973 한국미술협회이사장
1979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1981 문화공보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1983-1985 국립 현대미술관 관장(이사관)에 겸임
유리그림
혜화동 본당의 유리그림은 이남규(루가)교수가 1980년과 1989-1991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다. 총 29점의 유리그림은 일정한 선의흐름과 색조의 조화로 천지창조에서 성령강림까지의 구세사를 표현함으로써 성당전체가 해맑은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작품 중 4점은 (나는 길, 진리, 생명이다./ 성부/ 성자/ 성령) 3cm 두께의 두꺼운 유리를 사용한 달 드 베르(Dalle de verre) 라는 방법으로 제작되어 빛의 굴절과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빛의 효과를 한층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국산 색유리 타일을 만들어 냈고 이 새로운 재료로 훌륭한 작품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이남규 루가(1931~1993)
1953 공주사범대학 국문과 졸업
1957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68-1970 오스트리아, 파리에서 연수
1970 상파울로 비엔날레(브라질), 오파베 화랑(파리) 개인전
1970-1990 카톨릭 미술협회전 1971-1976 창작미술 협회전
1980-1989 오늘의 작가전
1982-1990 한국 현대작가 초대전
1983 이탈리아 현대 미술제(밀라노)
1984 현대 종교미술 국제전
1988-1991 카톨릭 미술가회 회장
1988 서울-삿포로전 1990 예술의 전당 개관 기념전
성수반
1901년 7월 김종영 (프란치스코) 교수가 디자인하고 마포구 도화동에 거주하는 박승환님이 제작하였다. 우성(又誠) 김종영은 조각예술의 볼모지였던 이 땅에 주상조각을 도입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며 현대 조각의 기틀을 닦았다. 그는 작품의 삶속에서 자신의 예술 이념을 실현하며 지조있는 삶을 살았고, 그의 사상과 예술형식은 우리나라 현대 조각사의 한 이정표가 되었다.
성수반은 성당의 현관이나 내부의 입구 쪽에 성수를 담는 그릇이며, 성수는 특별히 종교적인 용도를 위해 사제가 교회의 이름으로 축성한 물이다. 성수의 사용은 구약시대부터 유래되어(출애 30, 18-21) 2세기에 이미 집을 축성하기 위해 성수를 사용한 기록이 남아있다. 성수은 사제의 축성과 축복, 헌당식, 구마식, 장례예절 등에 사용되며 교회는 신자들이 각 가정에서도 성수를 사용하는 것을 장려한다.
성수에는 그 용도에 따라 보통의 성수와 성세수, 부활절에 특별한 예수(성수예식 Asperges)으로 축성되는 부활절 성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성수반의 성수는 신자들이 성당에 들어가기 전, 자신이 받은 세례를 새롭게 기억하면서 마귀를 쫓는 의식으로 성수를 손에 찍어 성호를 긋는 데 사용되었다.
"오, 주여! 이 성수로써 내 죄를 씻어 없애시고 마귀를 쫓아 몰으시고 악한 생각을 빼어 버리소서. 아멘."

김종영 프란치스코 (1915~1982)
1915 경남 창원 출생
1930-1935 휘문고등학교
1936-1941 동경미술학교 조각과
1941-1943 동경미술학교 조각부 연구과
1948-1982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
1958 전몰학생 기념탑(포항)
1960 서울시 문화상
1953-1980 국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1955-1965 서울시 문화위원
1959-1961 문화재 보존위원
1963 국민 재건운동본부 공로상. 3.1운동 기념탑(파고다 공원)
1965 마닐라 동남아 국제전 출품, 상 파울로 비엔날레 출품
1968-1972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1978 예술원상 수상
부활성수대
1994년 이종상(요셉)교수가 디자인하고 제작,기증한 성수대위에 임영선 교수의 예수부활상을 얹어 완성한 작품이다.그리스도의 성혈을 표징하는 암적색의 화강석(임페리얼)성수대 위에 황동으로 주조된 상반신 등신대의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신 채로 못자국이 선명한 두 손을 포개 얹고 계신다.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위하여 못자국이 있는 두 손을 크게 상조하였으며 몸 전체를 상하로 가늘게 과장함으로써 곧 승천하심을 암시하고 있다.주님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개 얹는 신자들이 많아 못자국이 많이 닳아져 있음을 볼 수 있다.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 손을 포개어 꼭 잡고 계신 성수대는 십자가의 기둥형식이며 주님의 손 바로 밑에 굴처럼 파내어 성수반을 넣었다.성수대의 정면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를 양각 부조기법으로 물갈이 마감하였으며 성수대의 하단부를 상단부보다 약간 넓게 만들어 안정감을 주었다.

너는 나늘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20,29-

이종상 요셉(1938~ )
1968 서울대 동양학과 졸업
1989 동국대 대학원 철학박사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 회장
서울대학교 박물관 관장 , 한국벽화연구소 소장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회 이사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일랑미술관 관장
2003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명예교수
[수상]
2011 가장 문학적인 상 미술인부문
2008 제8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2003 제1회 안견 미술문화대상
2003 은관 문화훈장
2001 제1회 한국미술을 빛낸 미술인
세례대
1958년, 성미술 제작에 평생을 바쳤던 이순석 (바오로) 교수의 솜씨로 다듬어진 단아하고 단순미가 넘치는 화강석 정다듬 기법의 빼어난 작품이다.
하라(賀羅) 이순석은 독창적 석조예술의 세계를 이 땅위에 정착시키고 이로써 다가온 응용미술의 시대, 그리고 디자인의 시대에 하나의 주춧돌을 놓는 일꾼의 삶을 살았다. 그의 삶과 예술은 한국공예의 전통과 현대를 이은 역사의 다리였다. 세례대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그 몸에 결합되고 성령의 도유를 받아 하느님의 성전이 되고 교회의 지체가 되며 '선택된 민족, 왕들의 사제들,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가 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한다. 이 세례대에서 원죄의 사함을 받게 되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며,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여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례대는 빠스카적 특성을 드러내기에 초대교회에서는 성당 문밖에 세례대를 보관하여 부활성야 미사전 예비자들이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서 하느님의 성전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이순석 바오로 (1905~1986)
1905 충남 아산 출생
1922 서화협회에 입회, 서양화 공부를 함
1931 동경 우에노 미술학교(현 동경예대) 도안과 졸업
1946-197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교수
1949-1967 국전 추천작가 및 심사위원
1955 서울특별시 문화상
1961 문화재 보존 위원회 위원
1962 문화훈장 대통령상 1965 예총회장
1969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
1970 정년퇴임 공로표창
1966-1978 대한민국 상공미술전람회 심사위원
1971 서울 가톨릭 미술가협회 회장
1975 대한민국 예술원상
1983 한국미술협회 고문
강론대
[목각 강론대]
성당 초기부터 있었던 목각 강론대는 목각고해소와 함께 성당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신축공사 과정에서 강론대를 바치는 기둥과 강론대가 분리되어
강론대는 본당에 남고 기둥은 명동성당으로 보내졌다.
또한 목각 고해소 역시 성베네딕도회의 일데폰스 플뢰칭거 수사가 정성을 다해 손으로
조각하여 만든 정교한 예술작품이다. 수사들이 덕원으로 수도원을 옮기면서 혜화동 본당에
남겨준 이 목각고해소는 옛 성당을 헐때 명동 대성당으로 보내졌다
성체조배실 감실
[성체조배실] 1994년 박영규 요한 교수에 의해 설계되었다.
성체 조배실의 구조는 크게 성체를 모시는 곳, 주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는곳, 그리고 간단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아늑한 느낌 들도록 설계했고 우리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창호지와 격자문을 사용했다.

[성체조배실의 감실]은 1993년 최봉자(레지나) 수녀가 디자인하였다.
중앙의 빨강색은 성체등으로, 성심(聖心)을 상징한다.
감실은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는 곳으로서 성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던 초막을 뜻하고
성체를 성당에 모셔두는 관습은 4,5세기경부터 시작되어, 8세기에는 제단에 모시게 되었고,
1215년 제 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이를 확정시켰고, 1918년 교회법으로 의무화하였다.
미사후, 성체를 감실에 모셔두는 목적은 첫째, 병자들에게 영성체를 시켜주는 데 있고,
둘째, 미사때 이외에도 성체의 형상속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흠숭토록 하는데 있다.
제대
1958년 김세중(프란치스코) 교수가 제작한 청색의 대리석 작품이다.
이 제대는 본당의 사목회장이었던 장 면 (요한)박사가 세례대와 함께 기증하였다.
제대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사제직을 거행하는 천상 제대의 상징이자 그리스도 자신(십자가의 죽음과 무덤)의 상징으로서, 지존에 대한 예(禮)로서 이를 대해 왔다. 사도들과 교부 시대에는 예수님때처럼 최후의 만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나의식탁의 개념이었으나, 4세기 초부터 순교자, 즉 '십자가의 제단'이라고 일컫어지는 골고타의 바위와 제대에 모셔둔 순교자들의 유해를 연상하게 되었다. 또한, '모퉁이의 머릿돌'이신 그리스도를 뜻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와의 결합을 의미하기도 하고, 죄인인 우리가 감히 초대받아 둘러앉는 주님의 잔칫상이 되었다. 제대에는 본래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 되어 있는데 이는 초기 교회나 카타콤바(Catacombae)즉, 지하 묘지에서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 돌로 세운 벽감(壁嵌)에서 의식을 행하던 것에서 유래한다. 누구나 제대를 지나갈 때면 항상 겸손하게 깊은 절을 함으로써 최대한의 공경을 드러낸다.
소화성당 십자고상
1994년 최봉자(레지나) 수녀가 브론즈로 제작한 작품이다.

최봉자 레지나
1942 인천 출생
195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1973 Italy Roma 국립미술대학 졸업
1973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입회
1979-현재 가톨릭 미술협회전 출품
1984 카톨릭 의과대학 성모상(2m)
1986 여의도 성모병원 성모자상(2m) 예수치유 보조
1988 논현동 천주교회 십자가, 성모자상, 십자가의 길
1994 강남 성모병원 성모자상
1996 카톨릭 미술상 수상
소화성당 성체등
1994년 최봉자(레지나) 수녀가 브론즈로 제작한 작품이다.

최봉자 레지나
1942 인천 출생
195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1973 Italy Roma 국립미술대학 졸업
1973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입회
1979-현재 가톨릭 미술협회전 출품
1984 카톨릭 의과대학 성모상(2m)
1986 여의도 성모병원 성모자상(2m) 예수치유 보조
1988 논현동 천주교회 십자가, 성모자상, 십자가의 길
1994 강남 성모병원 성모자상
1996 카톨릭 미술상 수상
소화성당 소화데레사상
성녀 소화데레사상은 9개월간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영적인 감동을 받아 1993년에 제작, 기증한 이종상 (요셉) 교수의 작품이다. 이 성상의 제작 초기에 작가는 개성적인 독창성을 나타내려고 하였으나 도중에 강한 계시를 받아 겸손되이 모든 것을 성령의 뜻에 맡기고 손만 도구로 삼아 제작에 임하였다. 그래서 작품의 명제도 '성녀 소화데레사 성령상' 으로 정하게 되었다. 또 본당의 사제, 수녀들이 직접 제작 과정에 참여하여 장미 꽃을 한 송이씩 만들어 봉헌함으로써 그 의의를 더욱 뜻깊게 하였다.

화강석 통돌로 정다듬하여 아취돔을 만들고 황동의 성상을 그 안에 모셨으며, 천상에는 성령을 나타내는 비둘기의 형상을, 배면에는 천사 상을 선(線)부조로 표현하였다. 돔의 우측표면에 성령의 비둘기상과 기적의 물고기 형상을 상하로 배치하고 중앙에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고상을 지극히 생략된 단선처리로 기초화시켰다.

가장 극명한 단선의 고상(苦像)디자인으로 음각 부조된 이 작품의 원형을 사용하여 혜화동 본당의 CI작업을 진행하였다. Corporate Identity란 혜화동 본당을 상징하는 신원 및 이미지 통홥 작업을 의미하는 데 무엇보다도 본당 내 성미술 작품 안에서 그 이미지를 발견한 것이 큰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본당로고

심벌마크 기본형

혜화성당의 심벌마크는 성당 고유의 상징체로서 독자성과 의미성을 동시에 고려하여 세심하게 제작된 것이다. 심벌마크는 십자가 위의 예수를 영적으로 단순화시켜 그 본질만을 표현한 것이며, '1927'로 제시된 숫자는 설립연도를 의미한다. 심벌마크의 기본이미지는 소화성당입구의 성녀소화데레사상 돔 우편에 조각되어 있는 예수의 기호화된 형상에서 가져온 것으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적 이미지를 단순하고도 아름답게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국문 / 영문 로고 타이포

심벌마크와 더불어 혜화성당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로고타이프 !

국문 로고타이프는 정면에 위치한 화강석 부조에 새겨진 성서구절의 글씨체를 기반으로 하여 독창성과 창의성을 살려 이루어졌다.

전용문양

혜화성당 전용문양은 포장류 또는 실내 환경요소 등 특별히 장식적인 환경이 요구될 경우 활용되는 것이다. 이는 적용 매체의 품위를 높이고 특성을 강화하며 혜화성당 성격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아울러 간접적인 복음 전파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전용문양은 영문 로고타이프(HyehwaCatholic Church)의 머리글자만을 조합시켜 일정 간격 연속배열한 것으로 위에 예시된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시그니처 블럭


혜화성당 전용문양은 포장류 또는 실내 환경 시그니춰는 혜화성당의 심벌과 로고타이프를 효과적으로 조합하여 일관된 이미지 형성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V.I.S (Visual Identification System)의 중심이다. 기본적인 표식은 심벌이며 로고타이프는 성당명으로서 이미지를 보다 선명하게 나타내는 표시 요소이다. 따라서 일관된 이미지 형성을 위해서는 본항에 예시된 비례 규정에 따라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요구 된다.